★ 上高地(가미코지) 북알프스에 대하여 가미코치주변 산에 최초로 올랐던 것은, 야리가타케산에 오른 엣츄도야마의 승려 반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는 산악신앙의 등산이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는 많은 외국인 기술자를 고용했습니다.
그 중에서 영국의 야금 기술자 윌리암 가울랜드(William Gowland)는 1887년 7월에 야리가타케산에 올라,
그 기록을 잡지에 소개했습니다. 그 안에 “Japan alps” 라는 표현을 이용했으며, 오늘의 “일본 알프스”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 영국인 선교사 월터 웨스튼(Walter Weston)도 야리가타케산에 올라
그 저서 『일본 알프스의 등산과 탐험』(Mountaineering and Exploration in the Japanese Alps)에서
가미코치주변 산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후 수상이 었던 히가시 쿠니노미야전하가 1916년에 야리가타케산에 등산하게 되어
급거 시마시마 ~ 도쿠고도게고개 ~ 묘진 ~ 야리가타케산의 등산로가 정비되었습니다.
이후 등산은 일부 한정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로 변화해갔습니다. 1915년 6월에 야케다케산이 분화하여 흘러나온 토석류가 아즈사가와강을 막아 그곳에 연못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다이쇼이케연못입니다. 가미코치 호텔(현재의 가미코치 제국호텔)을 건축할 때에는
그때 당시는 길이 없어 이 연못에 작은 배를 띄워 자재를 운반하였습니다. 1927년(昭和 2年)은 가미코지에 있어서 중요한 해였습니다.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3월에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소설 [갓빠]를 발표,
가미코지와 갓파교를 등장시켰습니다.7월에는 철도성(현재 JR)이 후원하여
東京과 大板의 신문사가 주최한 [일본팔경]의 계곡부문에서 가미코지가 꼽혔습니다. 이달에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자살하고 8월에 昭和 천황의 친아우 치치부노 미야 전하가
가미코지에서 호타카다케에 올라 야리가다케종주를 하여 연일신문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理學박사 나카이 타케시 유키노부는 국립공원 선정의 준비 조사 중에서 가미코지 강변에서
일본에서 처음으로 케쇼우 수양버들 을 발견한 해이기도합니다.
이 해를 계기로 관광객은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가미코지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기회로 가미코지의 목장은 폐쇄되어
갓파교까지 버스가 운행하게 되어 누구나가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관광지로서
또 마이카의 보급도 박차를 가해 해마다 관광객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가미코지 주차장은 항상 만차로 도로는 주차금지에도 관계없이 어디에서라도 주차를 해 버리는
사태에 빠져 1970년(昭和 50年) 마침내 마이카 규제를 실시..점차 강화하여
현재는 마이카의 통행이 전면 금지 되었습니다. 지금의 안보터널의 개통과 함께 더욱 더 국도 158호선의 교통량과 가미코지에의 관광객이 급증하는 관계로
가미코지에의 새로운 교통 수단으로서 沢渡(사와타리)로부터 上高地(가미코지)까지 터널에 의한 등산철도
계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알프스 지도 파일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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